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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재니져의 출근일지
    • DAY09. 수 백 번 양말을 개다 보면
    • EDIT BY 재인 | 2024. 2. 29| VIEW : 687



    건조기에서 꺼낸 바삭바삭하고 따뜻한 양말. 가게에서는 ‘양말은 웬만하면 건조기에 돌리지 마세요’하면서 나는 이 따뜻한 느낌이 좋아 건조기를 애용한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미리 돌려 둔 건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말을 꺼내 발을 쏙 넣으면, 완벽하다! 완벽한 출발. 이제 곧 봄이 오니까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양말들로 양말장을 갈아 줘야 한다. 양말장을 빈틈없이 채우던 두툼한 니트 양말들을 아래 칸으로 옮기고 가볍고 부드러운, 통통 튀는 색의 양말로 채우고 나니 입춘이 곧 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 겨울을 물러나게 만들 봄의 사람들은 또 누굴까.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늘 겨울이라 답 해놓고, 봄이 일으키는 포근한 냄새에 단번에 돌아서는 마음이 웃기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아빠의 양말이 화장실 문 앞에 뒹굴고 있다. 보통 가장 마지막에 씻는 내가 아빠 대신 치울 것을 뻔히 아는 나쁜 습관이다. 도대체 왜 빨래를 이렇게 두는 거냐고 따지려다가 그만둔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어차피 내 빨래를 가져다 두러 가는 길에 함께 치우는 것뿐이니 그리 수고로운 일도 아니다. 다만 의도 다분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냥 해주기로 한다. 약속에 늦은 나를 데려다주는 아빠를 떠올리며. 엄마도 아침을 안 먹지만 아침을 차리니까, 오빠도 여행을 갈 때면 가장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니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서로를 위해 적당한 번거로움을 눈감아주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애정이 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양말을 갠다. 발등이 보이게끔 평평하게 펼쳐 네모난 모양으로 딱지 접기 하는 양말 개기. 구달 점장님의 에세이 속에서 읽고 배운 방식이다.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수 백 번 양말을 갰다. 이 방식으로 양말을 개다 보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그만큼 더 양말 주인의 습관이 눈에 보인다. 엄마의 양말은 많이 걷지 않은 듯 깨끗하고 내 양말은 보풀이 많이 일어나 있고 오빠의 양말은 엄지발톱 부분이 금방 헤진다. 큰돈 들여 사준 아빠의 양말은 금세 짝을 잃었다. 뭐 이렇게 양말 개는 이야기를 길게 하냐고 묻는다면, 그 사소한 일상이 내게 큰 생각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변영주 감독은 영화를 만들듯이 분리수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를 구성하는 작은 일을 대충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작품에는 섬세한 시선으로 일상이 담긴다. 단골손님의 이름을 외우고 새로운 얼굴들이 건네는 인사에 익숙해지며. 어떤 불편은 기쁨으로 여기며. 양말 가게에서의 네 번째 봄이 오고 있다.